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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omestic Travel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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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배와 절망의 땅, 그러나 아름다웠다 (흑산도) | ||||||||||||||||||||||||||||||||||
| 이 름 | Oliver | |||||||||||||||||||||||||||||||||
| 날 짜 | 2013-09-08 11:37:38 | |||||||||||||||||||||||||||||||||
| 조 회 | 2,05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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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재언 기자]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가 외세에 끊임없이 시달림과 침략을 받은 것은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다.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흑산도가 수많은 섬들 중에 큰 주목을 받고 있는 것도 역시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다. 흑산도는 목포에서 남서쪽으로 93km 떨어져 있는 섬으로 면적 20.03㎢에 해안선 길이는 41.8㎞에 달하는 제법 큰 섬이다. 흑산도는 섬의 95%가 상록수로 이루어져 멀리서 바라보면 검게 보인다 하여, 흑산도라 일컬어졌다 한다. 흑산도에 처음 오는 사람은 예리항에 닿는 순간 두 번 놀란다 한다. 섬 하면 누구나 조그마한 섬을 연상하게 된다. 공을 차면 금세 바다에 빠지는 정도의 크기를 상상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흑산도에 와보면, 먼저 섬의 크기에 놀라게 된다. 그 다음에는 예리항구의 어선들과 북적거리는 사람들을 보며 또 한 번 놀란다. 섬답지 않게 번화한 규모에 놀라는 것이다. 흑산도는 목포에서 출발하는 관광지 홍도와 가거도를 이어주는 징검다리 섬이다. 그러면서도 흑산면의 구심적 기능을 한다. 영산도, 대둔도, 다물도, 장도 같은 섬들이 흑산도를 빙 둘러싸고 있고, 더 멀리로는 상태도, 중태도, 하태도, 만재도, 홍도, 가거도 등의 섬들이 모여 흑산면을 이루고 있다. 또한 이들 11개 섬의 해상교통 중심지로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근해에서 조업하는 어선들이 이곳에 와서 배와 그물을 수리하고, 기름과 얼음, 생필품과 물을 실으며, 선원들이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 일상인 곳이다. 파시가 성행했던 한때는 개도 천 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흥청대던 예리항은 파시가 사라진 지금 다른 풍습이 생겨났다. 오히려 태풍이 오기를 기다리는 항구가 된 것이다. 한 예리항 거주민은 태풍을 피해 오는 어선들이 예리항의 주요 수입원이라 말한다. 7~9월 태풍이 기승을 부릴 때면 예리항에 배들로 가득 차게 된다. 어선들뿐 아니라 홍도를 비롯한 흑산면 주위 섬들의 모든 배가 예리항으로 몰려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풍 때면 예리에서 진리까지 배 위로 걸어서 갈 지경이라는 우스갯소리를 덧붙인다고 한다. 지금은 선박의 기능이 좋고 기상정보가 정확하여 미리 목포항으로 피항하는 선박이 많아졌지만, 그래도 흑산도는 여전히 북적거린다. 흑산도는 다른 섬들과 달리 사람들이 살기에 조건이 불리한 곳이었다. 육지와 멀리 떨어진 관계로 교통의 불편도 불편이려니와 농경지가 부족한 관계로 식량이 턱없이 부족하여 그 옛날에는 보릿고개가 닥칠 때마다 배를 곯아야 했다. 교육과 보건 및 의료 서비스 등도 열악하여 군에서는 육지로 이주계획을 세운 바도 있었다. 그 동안 흑산도는 파시의 성행으로 인한 어업 전진기지로 부상되었지만, 파시의 쇠락으로 홍도 관광길을 거쳐 가는 경유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파시의 쇠퇴로 섬 경제에 미치는 안타까운 상황이 지속되자 흑산도 젊은이들이 모여 대책방안을 모색했다. 그들의 해결책은 흑산도 새로 알리기 운동이었다.
흑산도 키워드, 파시 수산청에서 1964년에 흑산도를 어업전진기지로 선정한 것은 흑산도 예리항이 갖는 파시의 기능이 실제로 커서였다. 파시란 풍어기에 일시적으로 고기잡이배와 운반선 사이에 고기의 매매가 이루어지는 배와 배 사이에 형성되는 거래시장을 말한다. 먼 바다에 있는 흑산도는 파시가 설 정도로 엄청난 양의 고기가 잡히는 황금어장의 중심지였다. 홍어뿐 아니라 조기, 고등어, 삼치 등 파시의 종류도 다양했다. 하지만 흑산도 예리항 이외에는 근처에 배를 정박할 만한 곳이 없었고, 태풍이라도 불라치면 중국과 일본 어선까지 몰려와 국제적인 항구역할마저 해야 했으므로 항구의 확장개발에 대한 지원이 절실했던 것이다. 지금은 사라진 파시가 당시에는 수시로 열려, 흑산도 예리항은 배들, 특히 조깃배로 장관을 이루었다.
역사를 품은 섬 흑산도 고고학의 자료에 의하면 흑산도에는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먼저 1966~1967년에 걸친 서울대학교 연구소의 지표조사 결과, 흑산도와 우이도, 태도, 가거도 등에서 돌도끼와 토기가 파묻혀 있는 조개무지와 고인들 등의 고고학 자료가 발견되었다. 문헌 자료에 의하면 통일신라?고려시대에 흑산도가 한?중 해상교통로의 거점이었음이 잘 나타난다. 먼저 장보고의 후원으로 중국 유학생활을 수행한 후에 847년에 귀국했던 일본의 고승 자각대사 엔닌은 『입당구법순례행기』에서 귀국길 여정 중 들었던 흑산도에 대한 정보를 기록으로 남긴 바 있고, 1123년 고려를 방문한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도경』에서 흑산도에 대하여 이상의 글들로 보아 당시에는 중국을 오가는 배가 반드시 흑산도를 거쳤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흑산도는 중국 대륙과 한반도를 국제 해양항로의 중요한 거점으로 활용되면서 고대 해양문화를 꽃피운 곳이다. 그러므로 선사시대부터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흑산도는 가히 역사를 품은 섬이라 할 수 있다. 흑산도가 크게 번성하게 된 것은 828년(신라 흥덕왕 3년) 장보고가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당나라와 교역하기 위해 흑산도를 중간기점으로 삼으면서부터라고 한다. 그 이후 고려시대까지 번성을 누린 흑산도는 교역의 거점항에 해당하는 읍동마을에 해적의 침입을 막을 목적으로 읍동마을에 산성을 쌓았는데, 상라산성이 그것이다.
흑산도는 많은 인물이 유배생활을 했던 섬이다. 옛날에는 유배와 절망의 땅이라 여겨 바닷물도 푸르다 못해 검게 변한 곳이라는 표현을 하던 곳이지만, 실제로는 선비들의 정신적 쉼터로서 강인한 삶의 체험지라 할 수 있다. 흑산도 서안의 사리마을에는 유배문화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정약전을 비롯하여 최익현과 김홍록, 김귀주 등 모두 17명의 개별 비석이 있는 것으로 보아 흑산도로 귀양살이를 다녀간 유배자들의 수가 120명 정도로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 가운데 천주교 박해 때 흑산도에 유배된 정약용의 형 정약전은 이 섬에 머물면서 자산어보를 썼다. 유배생활중 저술한 자산어보는 우리나라 최초의 어류도감으로 생태보고서이자 백과사전으로서 오늘날까지 기여한 바가 큰 책이다. 진리와 천촌리는 면암 최익현 선생의 유배지였다. 병자수호조약(1876)이 체결되자 조약을 체결하려거든 내 목을 먼저 치라고 상소를 올렸다가 이곳에서 2년 정도 유배되었는데, 유배생활 동안에도 진리에 일심당이란 서당을 세워 후학을 양성하였고 천촌리로 옮긴 후에도 서당을 지어 후학을 양성하였다. 유배중에도 교육사업으로써 섬에 기여했던 것이다. 섬사람들의 입장에서는 훌륭한 스승으로부터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귀중한 기회였을 것이다. 흑산도 천주교회 유적지 지석묘군을 지나 조금 더 가면 흑산중학교가 있고, 얼마 가지 않아 흑산성당이 보인다. 흑산성당은 바로 앞 흑산진리교회와 마주하고 있다. 유서 깊은 성당이라 박물관까지 있었다. 성당 안에 박물관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 성당의 역사가 깊다는 것을 뜻한다. 일찍이 천주교 신자 조수덕이 고향 흑산도로 귀향하던 해인 1951년 8월 죽항리에 공소를 만든 것을 시작으로 이곳의 천주교는 여느 섬보다 교세를 확장하였다 한다. 브라질 신부가 1958년 성당을 신축하여 터를 잡은 이후, 1960년에 흑산성모중학교를 설립하여 1973년 공립 흑산중학교가 설립되기 전까지 이 지역 중등교육을 담당하였고, 1969년에 준공한 대건조선소에서는 선박수리와 건조는 물론 이곳에서 나오는 전력으로 예리, 진리 등에 전기를 공급하였다 한다. 1969년에는 흑산신용협동조합을 설립하여 금융지원을 하는 등 천주교가 섬에 이바지한 바가 컸다. 흑산도 둘러보기 목포연안여객터미널에서 흑산도로 가는 배편은 하루에 두 번, 관광 시즌에는 네 번 있다. 흑산도로 가기 위해 배에서 보내는 시간은 대략 1시간 50분 정도이다. 흑산항 부근은 거의 상가 위주다. 쌈지공원 북쪽 지점 뒤로 언덕이 있고 정자형 전망대가 있다. 해안도로는 북서쪽 방파제까지 계속 이어진다. 파출소 옆 쌈지공원에 위치한 단층짜리 전망대부터 들렀다. 높지 않아도 그런 대로 조망이 좋아 뿌듯했다. 진리 마을에 있는 진리당에서 언덕을 넘어가면 배낭기변 해변이다. 자칫하면 지나칠 수 있는 위치라 유의해서 찾아야 한다.
진리 마을 옆에 있는 읍동마을 입구에서 밭을 끼고 가다보면 길은 서서히 오르막길이 되었다가 굽이굽이 구절양장의 상나리고개에 접어든다. 그 유명한 열두 고갯길이다.
급경사진 상라봉 굽이도로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마리라는 표지석이 나온다. 마을 뒤에 있는 천마산(말 천 마리가 운집한 형상)의 정기를 이어받는 곳이라 하여 지어진 마리라는 지명이다. 상라봉 전망대에서 가장 가까운 곳, 내리막길에 조성된 마리마을이다. 마을의 선착장 주변에는 가오리를 말려두어 작은 섬마을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그렇게 크지 않은 네모 모양의 선착장이다. 마을은 안쪽으로 한참 들어가 있다. 좀 멀리 떨어진 장도에서도 접안에 편리하여 이 선착장을 이용한다고 한다. 마리에서 경사가 급하고 굽이치듯이 휘도는 도로를 따라가면 흑산진의 산 너머 마을이라는 뜻의 전디미, 곧 비리라 불리는 마을에 이르게 된다.
이곳을 지나면 곤촌리 다음은 심리다. 상라봉 전망대에서 심리마을까지 12km에 이르는 일주도로는 줄곧 창망한 바다를 오른쪽에 끼고 이어진다. 흑산도 서쪽 해안 중 가장 깊숙이 들어간 만에 있다 해서 붙여진 마을이름 심리는 흑산도 서남쪽 해안에 자리하고 있다. 심리에는 마을 가운데에 후박나무 군락이 있다. 해변을 끼고 있는 도로변에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데, 그 앞을 공원처럼 조성하여 후박나무 이야기라는 타이틀도 붙여두었다. 심리보다 작은 마을 암동을 지나치면 가파른 오르막으로 구불구불한 길을 만나게 된다. 구불구불한 길을 올라 한다령이라는 고개를 넘으면 사리마을로 갈 수 있다. 한이 많은 고개라는 이름이 고갯길의 모양새와 왠지 어울려 보인다.
사리마을은 모래미라고도 불리는 남쪽의 바닷가 마을이다. 40년전에 사리 마을은 부촌이었다. 멸치가 가장 많이 잡히고 연승으로 조업을 하였다. 그래서 마을에 상고선이 3척이나 있을 정도로 위치가 좋은 마을이다. 흑산도에서 만난 여타 마을과 달리 섬 내에서 농사를 짓는 몇 안 되는 마을 중 한 곳이다. 섬마을의 농사라고 해봐야 가족들이 먹을 것 정도 짓는 것이 고작이지만 농토가 비좁고 주업이 어업인 이곳 섬사람들에게 이 정도의 농사는 큰 규모이다. 정약전 선생이 이곳에 자리잡은 이유가 이런 연유가 아닌가 싶다. 사촌서당은 손암 정약전 선생께서 후학을 양성하던 서당이다. 사리마을이 한 눈에 들어오는 산비탈에 이중으로 담장을 두른 사촌서당을 복원해놓았다. 이곳에서 내려와 계속 걸어가면 해안이 나타난다. 여러 개의 돌섬들이 가로막고 있는 사리포구다. 이 포구 앞에 7개의 작은 섬들이 떠서 방파제 구실을 하는 덕분에 동남풍이 불어도 어선들이 안전하게 정박할 수 있다. 그 앞으로 고깃배들이 줄을 지어 늘어서 있다. 칠형제바위라고 불리는 7개 돌섬이 천연 방파제를 이루는 포구 안쪽으로 크고 작은 고깃배들이 오롱조롱 떠 있는 풍경은 그림처럼 아름답다.
사리재 방향의 S자 길도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다. 이곳에도 박도순 시인의 시가 새겨진 시비가 있다. 포인트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도로 왼쪽으로 돌탑과 함께 팔각정자 쉼터가 있다. 쉼터이름은 가산쉼터. 거기에서 몇 미터 더 가면 길은 왼쪽으로 급하게 꺾어진다. 산을 깎아 도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왼쪽 산은 솔데미라는 곳이다. 사리마을 다음에 닿는 곳은 소사리 마을이다. 마을 앞에 모래등성이가 있어 소사리라 하였는데 사리 마을과 함께 가장 좋은 어장을 가지고 있고 멸치 마을로 유명하다. 이 마을에 탐방로 입구가 있다. 마을 뒤에 높이 솟아 있는 문암산 등산로인데 북서에서 동남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길이 하천을 따라 바다로 이어지므로 이곳 소사리 마을은 길 따라 길쭉하다. 마을 앞바다의 구문여는 거센 파도가 칠 때 구멍 사이로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는 장면이 장관이라고 한다. 소사리를 벗어나면 천촌리와 소사리 사이에 있는 모래해변 샛개를 만난다. 흑산도의 2개 해수욕장 가운데 하나인 샛개 해수욕장이 바다 쪽은 모래, 육지 쪽은 자갈로 되어 있다. 모래알이 분말 같아서 손으로 만지면 먼지처럼 부서질 정도로 곱다. 하지만 대중교통이 불편하고 편의시설 하나 없으니 숨어 있는 명소라 할수밖에. 예리에서는 차로 25분 정도 소요된다. 소사리에서 승용차로 3~4분 정도만 가면 천촌리 여티미에 닿는다. 천촌리 산이 높고 마을이 길게 뻗었다하여 천촌리라 하였다. 큰 바위 위에 커다란 소나무가 무성하게 자란 아래쪽에 초라한 비석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면암 최익현 선생 유허비가 그것이다. 최익현 유적지라는 커다란 안내판에 비해 비석은 매우 작다. 비석을 두른 돌난간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 조촐한 면암 유적지에는 근래 세워진 비석 하나 그리고 면암이 암벽에 새겼다는 기봉강산 홍무일월其封江山 洪武日月이라는 글자뿐이다.
이렇게 바람과 파도는 무서운 존재이지만 바다와 육지의 해변가를 정화시키고 바다를 풍요롭게 해주는 두 얼굴을 가진 자연 자원이라고 할 수 있겠다. 흑산도 지리 흑산도는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에 딸린 섬으로 면적 20.03㎢, 해안선 길이 59.8㎞, 산높이 345m이다. 인구는 1149가구 2,246명 (2012년 기준)이다. 목포에서 남서쪽으로 97.2km 떨어져 있으며, 홍도·다물도·대둔도·영산도 등과 함께 흑산군도를 이룬다. 신안군 가운데 섬이 많은 면에 속하는 흑산면은 흑산도를 포함한 11개의 유인도와 다수의 무인도를 합쳐 총 100여 개의 섬들로 형성되어 있다. 흑산도 관광명소는 진리 처녀당과 초령목(천연기념물 제369호), 배낭기미 해수욕장, 세께 해수욕장, 상라산성 (반월성), 석주대문, 상라봉, 예리항 등이다.
전통과 민속과 문화와 역사가 살아 숨쉬는 땅 흑산도, 유배와 절망의 땅이었던 흑산도는 바닷물도 푸르다 못해 검게 변한 곳이다. 이제 쾌속선이라는 문명이 들어와 전통과 현대가 함께 어울려져서 수많은 사람들이 흑산도를 ?고 있다. 파시로 오랫동안 흥청거리던 섬, 해변에 즐비하게 서 있는 생선가게, 식당, 술집. 선구점, 여관, 다방 등등 잡다한 점포들을 지나 흑산도를 떠나기 위해 부두로 나왔다. 지금은 한가롭기 그지없는 항구지만 파시로 흥청 거리던 오래된 항구답게 잔재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조기와 고등어, 고래, 삼치, 홍어가 떠난 흑산도, 그들의 회유를 기다리며, 수천척의 어선들과 수백명의 술집, 다방 등의 종업원들이 다시 흑산도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뱃고동이 울어 대는 여객선을 향하여 발걸음을 제촉하였다. 조기가 떠난 자리에 관광객들이 드나들기 시작하여 다행이다. 앞으로 더욱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에 오기를 바라면서 흑산도를 떠난다. 흑산도 가는 길 남해스타호, 목포―흑산, 1일 2회 / 소요시간: 1시간 50분 흑산도 섬내 교통 흑산항에서 마을버스 운행. 택시로는 1코스 3만 원, 2코스 6만 원, 3코스 8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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