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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omestic Travel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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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골사에서 운문산까지 (청도) | |
| 이 름 | Oliver |
| 날 짜 | 2008-11-17 14:20:01 |
| 조 회 | 1,638 |
| 트랙백 | http://bookyung.com/bbs/skin/sirini_ezset_fullpack/ezset_catch_trackback.php?id=DomesticTravel &no=7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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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경북 청도군 운문면 운문산 [1188m] 부산 - 경부고속도로 - 서울산ic - 언양 - 밀양 - 석골사 - 상운암계곡 - 치마바위 - 정구지바위 - 돌탑 - 상운암 - 운문산 - 상운암 - 돌탑 - 정구지바위 - 치마바위 - 상운암계곡 - 석골사
소요시간 : 약 6시간 [휴식포함] 왕복 9km
▲ 운문산 map
▲ 들머리 찾기/부산에서 서울 방향으로 경부 고속도로를 진입... 약 40분후쯤 서울산 나들목에서 내려 밀양 방향으로 좌회전을 하여 24번 지방 도로로 계속 직진을 한다.새로 개통된 석남 터널을 지나고 얼음골을 통과하면 산내면 삼양 마을에 도착하게 되는데 잠깐 우측을 보면 오늘 우리가 가야할 운문산이 버티고 서있고,운문산 아랫재 건너편엔 1080봉이 웅장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그 아래로 백운산이 삼양 마을을 지켜주고 있는 모습이 너무도 대견 서럽다.삼양리에서 다시 밀양 방향으로 승용차로 약 5분쯤 내려가면 사진 ①처럼 석골과 석골사라는 커다란 글씨의 안내석이 위치를 알려주고 있다. [눈을 크게 뜨고 살짝 지나가지 않도록 세심한 관찰을 요하는 지역임] 안내석을 확인 했다면 바로 우회전을 하여 사진 ②처럼 6m 소방 도로인 원서리 마을로 진입을 하게 되는데 도로 주위에는 아직 설 익은 사과들이 햇볕을 마음끝 마시며 싱싱하게 자라고 있는 모습을 한끗 볼수 있다.사진 ③처럼 다리를 지나면 석골사를 알리는 대형 간판이 정면에 부착 되어 있고 우로 굽어진 도로라 매우 조심을 요하는 곳이기도 하다. 경제 속도로 약 3분쯤 석골 옆을 달리면 사진 ④처럼 석골사 입구가 보인다,주차장에서 1분쯤 오름 산행을 하면 석골사라는 사찰이 왼쪽에 보이는데 여기서 부터가 바로 들머리이다.
▲ 석골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이며, 신라 진흥왕 12년[560년] 비허가 창건 했다고도 하고, 혜공왕 9년[773년]에 법조가 창건 했다고도 한다. 비허가 작은 암자를 짓고 보양과 서로 왕래하며 수도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하므로, 비허가 절을 창건하고 법조는 중창한 인물로 추정된다.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할 때 경제적인 도움을 많이 주어, 고려 건국 후에는 암자를 9개나 거느릴 정도로 발전하였다. 한때 석굴사 또는 노전사라고도 불렀다.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 때 의병들이 활약하던 곳이었으며, 1753년(영조 11) 함화가 중창한 뒤 오랫동안 명맥을 이어오다가 1950년에 불에 탔고, 1980년대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대광전과 칠성각·산신각·요사채 2동이 있고, 유물로는 석조아미타삼존불과 절구·석탑 재료 등이 전한다. 이 중 석조아미타삼존불은 대광전에 있으며, 석탑 재료는 기단과 보주 등만 발굴되었다.
전설로는...상좌스님과 스승인 주지스님이 있었다. 주지스님은 제자인 상좌스님보다 인망과 학덕이 못한것을 항상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늘에 계신 옥황상제께서도 상좌 스님을 먼저 하늘로 올라오게 했기문때에 항상 상좌스님을 죄의 구렁텅이에 몰아 넣을 생각만 하고 있었다. 상좌스님 나란히 걸어가다상좌스님이 길가 보리밭에서 한창 익어가는 보리이을 손로 슬쩍 만져본다는 것이 그만 이삭을 훑어 버리고 말았다. 그것을 본 주지스님은 기회를 놓칠세라 지팡이로 머리를 툭툭치며 영원히 강철이[지나가기만하면 초목이 다 말라 붙는다는 전설상의 독룡]가 되어라고 주문을 외웠다.상좌스님은 주문을 풀어 달라 애원을 했어나, 주지스님은 주문을 그치질 않았다. 더 이상 견딜수 없어진 상좌스님은 원망에 찬 눈초리로 강철이가 되어 호박소 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옥황상제는 주지스님의 술법으로 상좌스님이 강철이가 된줄은 깜박잊고 주지스님을 먼저 승천시켰다. 물속에 갇힌 강철이는억울함을 누리고 승천하기 위해 부처님의 공덕을 열심히 닦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년후, 보리가 익어갈 무렵, 강철이는 옥황상제에게 승천시켜 줄것을 간청했지만, 옥황상제는 죄값을 더치루어야 한다며 강철이를 외면해버렸다. 화가난 강철이가 몸부림을 치며 떠다니는 곳에 번개가 치고 우박이 쏟아져 농작물 수확을 거둘수 없게 되었다. 자꾸 이런 이들이 되풀이 되어 결국 강철이는 승천할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승천할 수 없는 강철이의 억울함으로 해마다 창녕 화황산과 삼량진으로 이어지는 상중에 떠올라 다니며 몸부림을 쳤다. 보리가 익을 무렵이면 몸부림이 시작되었고, 강철이가 날아다니는 곳에는 우박이 쏟아져 농작물의 피해가 많아진 것이다. 강철이가 살던 이곳이 호박같이 생겼다고 해서 호박소 또는 구연이라 부른다. 이곳에는 이조때 가뭄이 들때마다 밀양부사가 몸소 와서 기우제를 지내며 단비가 내리기를 기원했다고 한다.
▲ 쉬지 않고 항상 맑고 깨끗한 물만 떨어지는 석골폭포,이 계곡은 원서리 석골에서 상운암 계곡까지 새소리와 물소리의 리듬이 계속 이어지는 너무나 아름다운 곳임.원서리 마을의 식수임.
▲ 들머리에서 출발한지 10분후 부터는 약한 너덜길이 이어진다.
▲ 잘 정돈되고 부식이 되지 않는 특수 재질로 제작된 이정표들.길 찾기가 너무 쉽게 요소 마다 잘 부착 고정되어 있다.
▲ 오름 산행에서 만난 석골계곡과 상운암 계곡, 맑은 물의 모습과 주위의 풍광.
▲ 치마바위는 화강암 절벽이 치마를 펼친 듯 하다고 하여 생겨난 이름으로 산사님들이 오름 산행에서 잠깐 쉬어갈수 있는곳, 전망대에서 정면을 바라보면 금방이라도 치마품에 안길듯 싶은 우람찬 바위로 매우 빼어난 조망을 자랑한다,
▲ 치마바위 전망대에서 바라본 수리봉과 문바위의 모습.
▲ 상운암 계곡에서 만난 1급수에만 산다는 민물 가재의 늠늠한 자태.
▲ 정구지바위는 바위 위에 부추 모양의 난이 자생하고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한 덩어리로 뭉쳐진 매우 큰 바위이다, 산행길 옆에 외롭게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정구지바위에서 12시 방향으로 바라본 암봉의 군락들.
▲ 상운암 아래 덜겅에 자리잡고 있는 돌탑들.오랫동안 쌓아올린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여기서 부터 상운암까지는 800m이다.
▲ 운문산과 상운암으로 가는 이 지역의 오름 산행은 로프가 깔려 있는 매우 심한 된비알이며 너덜길이 700m나 계속이어진다.보폭의 속도조절이 꼭 필요한 지역이다.
▲ 상운암은 석골사의 부속 암자로 고지가 약 900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암자 입구엔 흘러 내리는 물을 식수로 사용하기 위하여 항상 물을 받기위한 프라스틱 통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고,암자 주변으로는 텃밭에 상치랑 기타 푸성귀들을 잘 가꾸어 놓았다.
▲ 상운암 정문에서 왼쪽으로 오름 산행을 하면 산죽의 군락이 1~2분 이어지고, 멀리 가지산의 형님 봉우리가 나무 사이로 살짝 얼굴을 내미는 모습이 희미 하게나마 시야에 들어 온다.
▲ 조망이 탁 트이고 주위가 넓은 운문산 정상에서는 잘 정돈된 이정표와 멀리 삼양마을, 남명마을까지 시야에 들어오고, 또한 멀리 운무에 묻힌 가지산의 흐릿한 조망은 더욱 멋지다.
▲ 운문산의 높이는 1,188m이다. 영남의 7산 가운데 하나로, 가지산(1,240m)·천황산(1,189m) 등과 함께 이른바 영남알프스를 이룬다. 지질은 편마암과 화강암이 대부분이고, 식생은 소나무·낙엽송·주목 등 침엽수와 참나무·고로쇠나무·음나무 등 활엽수가 어우러진다. 경상남북도의 경계를 따라 뻗은 태백산맥 남단의 주봉 가운데 하나이며, 운문현을 중심으로 동운문과 서운문으로 나뉜다. 동운문은 남쪽 비탈면의 절벽 밑에 구연동, 얼음골로 불리는 동학, 해바위 등 천태만상의 기암이 계곡과 더불어 절경을 이룬다. 또 북쪽 기슭에는 560년(신라 진흥왕 21)에 창건된 운문사가 있고, 남쪽에는 석골사 등 크고 작은 절과 암자가 산재한다.
▲ 운문산 정상에서 희미하게 잡힌 거대하고 웅장한 가지산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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